2022년 11월 24일 목요일 대체로 맑음 (미세먼지 많은 날)
수원에서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해
나이 들어 백수가 된 지금 큰맘 먹고
오늘 드디어 화성 답사에 나섰다.
오늘도 대중교통인 열차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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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집에서 출발.(승용차) 송학동 골목에 주차.
05:30 수원행 무궁화열차 탑승.(요금 경로 6,400원)
08:15 수원역 하차.
08:35 팔달문 방향 시내버스 탑승.(요금 1,450원)
08:52 팔달문에서 하차.
09:10 지동시장에 들러 아침식사.
09:30 수원화성 성곽길 답사 시작.
12:20 수원화성 답사 종료.
12:25 점심식사(아들 며느리와 만나서 갈비탕)
13:00 (아들.며느리는 점심시간 종료 직장복귀)
13:10 화성행궁 답사 시작.
14:20 화성행궁 답사 종료.
14:22 팔달문에서 수원역 방향 시내버스 탑승.(요금 1,450원)
14:40 수원역도착.
15:10 익산행 무궁화 열차 탑승.(요금 경로 9,400원)
18:26 익산역 도착.
18:35 승용차로 집으로.
18:58 집도착 (오늘 일정 종료)
수원화성 답사.
세계문화유산 화성.
화성 성곽 한바퀴.
각루(角樓)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
치(雉)
성곽의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
성벽에 근접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 말이다.
꿩은 몸을 잘 숨기고 밖의 위험요소를 잘 감시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꿩의 본능을 착안하여 치성이라고 명명함.
포루(舖樓)
화성에는 5개소의 포루가 있으며
치성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초소와 군 대기소와 같은 곳.
봉돈(烽墩)
일반 봉수대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1796. 6. 17. 완성)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 보기 드문 형식의 예술작품 같은 수원 화성의 대표적 시설임.
횃불이나 연기로 용인의 석성산과 흥천대 봉화로 신호를 보냈다고 함.
적대(敵臺)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성문의 좌우에 설치하는 방어 시설물.
포루와 치성은 성곽 밖으로 완전히 돌출된 반면에 적대는 시설물의 반만
외부로 돌출되고 반은 성안으로 돌출되어 있음.
장대(將臺)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 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 임.(동서 2곳에 있음.)
공심돈(空心墩)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화성에서만 볼 수 있음.
노대(弩臺)
성 가운데서 다 연발 활인 쇠네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 임.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2곳이 있음.
옹성(甕城)
반달 모양으로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함.
용도(甬道)
좁고 긴 성벽으로 둘러싸인 통로를 말함.
좌우 지형이 급경사를 이루면서도 우뚝 솟아 있어 남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만약 적에게 빼앗기면 성안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서남암문 밖으로 좁고 긴
성벽인 용도를 만들었음.
암문(暗門)
적에게 노출되지 않고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문.
팔달문(八達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화성 4대 성문의 남쪽 문.
(보물 402호)
지동시장에 들러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여기 팔달문에서 성곽길 걷기를 시작한다. (남쪽에서 본모습)
서쪽방향에서 바라본 팔달문.
성곽길에 오르기 전 잠시 팔달사를 둘러본다.
팔달사.
화성 성곽길 시작점.
뒤돌아본 팔달문.
성곽길 시작점.
남치(南雉)
남치는 남포루와 팔달문 서쪽 남서적대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화성에는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남치는 서쪽 경사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치성의 길이가 짧고 폭도 좁다. 서 3치와 마찬가지로 치성 안쪽에 돌로 담을 쌓고
출입구를 냈는데 이 구조는 적대와 비슷하다. 남치는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제법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성곽에서 잠시 내려와 약수터를 다녀온다.
약수터 건너편에 단풍이 이쁘다.
팔달 약수.
약수터를 둘러보고 다시 성곽을 오른다.
남포루(南砲樓).
남포루는 팔달산의 남쪽 기슭 경사지에 지은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 했다.
그중 남포루는 규모가 가장 작다. [화성 성역의궤] 에는 포루 내부 높이가 균일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지형에 따라 각 층의 높이가 다르다. 남포루 1층은 1,7m 2층은 1.25m로 만든 반면
누각이 있는 3층은 높이 3m 이상을 확보하였다.남포루는 포루 중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다.
서남암문.
서남암문.
적에게 들키지 않고 드나드는 문.
화양루로 통하는 용도.
서남암문.
용도(勇道).
용도는 좁고 긴 성벽으로 둘러싸인 통로를 가리킨다. 이곳은 좌우 지형이 급경사를 이루면서도
우뚝 솟아 있어 남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만약 적에게 빼앗기면 성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서남암문 밖으로 좁고 긴 성벽 인용도를 만들었다. 용도 중간에는 좌우에 치성을 하나씩 만들어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용도 끝에는 서남각루가 자리 잡고 있다.
서남각루(화양루)
서남각루는 화성 서남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로 *화양루* 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다. 화성 축성 초기에는 서남각루를 만들 계획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곳은 남쪽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로 만약 적에게 빼앗기면 공격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계획을 변경하여 서남암문 바깥으로 길게 용도를 내고 그 끝에 각루를 세웠다.
화양루 바깥 풍경
서남암문을 답사한 후 용도를 따라 화양루를 보고 다시 서남암문으로 되돌아 나온다.
용도.
화양루를 돌아본 후 서남암문으로 되돌아 온다.
서남암문.서남관사.
서남암문은 화성 서남쪽에 낸 비상 탈출문이다. 화성의 5곳 암문 가운데 유일하게 문 위에 군사
들이 머무는 포사(舖舍)를 세웠다. 이곳은 지형상 적에게 빼았기면 성안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서
특별이 포사를 만들어 침입을 대비했다. 암문에는 화공에 대비하여 *오성지*도 설치하였다.
이름은 암문이지만 성 안밖을 드나드는 통로가 아니라 용도를 거쳐 서남각루(화양루)로
나가는 문이다.
3.1 독립운동기념탑.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
3.1운동 기념탑 앞에 노란 단풍이 아름답다.
서3치(西三雉)
서3치는 서포루와 서남암문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다르다. 서3치 바깥은 지형이 비교적 평탄하여 팔달산에 설치한 다른치성에 비해
길이가 길다.치성 안쪽으로는 여장에서 1m정도 돌출한 담을 쌓고 가운데 출입구를 냈다.
*적대*와 비슷한 구조는 서3치와 남치에서만 볼 수 있다.
성곽 위.
성곽 밖.
팔달공원으로 연결된 통로.
복원 할 당시 만든 통로로 보인다.(팔달공원 공원 안내소가 보인다)
팔달공원 성 안쪽으로 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입구에 소나무와 조화를 이룬 단풍 잎이
너무 화려하다.
서포루 앞의 단풍.
서포루(西舗樓)
서포루는 서암문과 서3치 사이에 있는 치성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효원의 종.
서암문(西暗門).
화성 서쪽 팔달산 꼭대기 성벽에 설치한 비상 출입문이다. 아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서암문은 성벽을 안쪽으로 90도 꺾어 들어가도록 쌓고 그 사이에 문을 내
바깥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화공에 대비하기 위한 오성지나 적을 감시하기 위한 비예
같은 별도의 방어 시설을 두지 않고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살렸다.
서장대.
서장대(西將臺)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사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서장대는 시야가 트여있어 멀리 용인 석성산 봉화와 현릉원 입구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다고 한다.서장대는 아래층은 사면 3칸 위층은 1칸으로 위로 가면서 좁아진형태다.
아래층은 장수가 머물면서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위층은 군사가 주변을 감시하는 용도로
썼다. 정조는 서장대에서 군사훈련인 성조(城操)를 거행했는데 1795년의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있다.위층 처마 밑에 걸린 화성장대(華城將臺)와 *시문* 현판은 모두 정조의
작품이다.1795년 성조가 끝난 뒤 정조는*화성장대* 현판의 글씨를 직접 쓰고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정조기 지은 두 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서장대(팔달산 118m) 정상에서 보는 수원시 일원.
옅은 안개로 시야가 흐리다.
정조의 시.
정조의 작품.
서장대의 소나무.
수원시 일대를 볼 수 있는데 오늘은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성곽 바깥에서 보는 성벽.
서노대(西弩臺).
서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높게 지은 시설로 군사 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노대는 적의 동태를 살 피기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 씌었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있다. 서노대는 서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팔달산 꼭대기에
있어 적을감시하기에 적합하다. 팔각형의 몸체가 위로 가면서 줄어드는 안정적인 형태로
안에는 흙을 채우고 겉은 벽돌을 붙였으며 여덟 방향의 모서리는 돌로 깎아 마감하였다.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를 지나면 고도를 서서히 낮추되 조금씩 오르내림의 성곽이 이어진다.
서2치(西二雉).
서 2치는 서포루와 서암문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서 2치는 팔달산 정상으로 향하는 급한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어
규모가 작다. 붉은빛을 띤 다양한 크기의성돌이 잘 남아있는데 평지 성벽보다 규모가 큰 장방형
석재를 하부에 설치하여 하중을 지탱하도록 했다.
서포루(西砲樓)
서포루는 팔달산 중턱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서포루는
경사지에 지었기 때문에 평지에 설치한북서포루와 북동포루 보다 규모를 작게 만들고 화포와
총을 쏘는 구멍의 숫자도 줄였다. 포루는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에는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이 있고 상층에는누각이 있다.서포루 상의 누각은 복원했으나 벽돌로 만든 하부에는 창건
당시의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성곽길은 화서문을 거쳐 장안문 방향으로 계속 이어진다.
북수원 방향의 조망.
서포루 바깥.
서포루 바깥.
서 1치.
서북각루와 북수원 풍경.
서북각루(西北角樓).
화성 서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다. 서북각루는
팔달산으로 오르는 경사지에서 성벽이 휘어진 곳에 자리 잡아 서북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층에는 군사들이 머무는 방에 온돌을 놓았고 위층은 마룻바닥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사면에 널빤지 문을 달고 구멍을 내서 적을 감시했다.
서북각루 옆면.
화서문.
화서문(華西門).
화서문은 화성의 서문이다. *화성의 서쪽* 이란 뜻이지만 서쪽에는 팔달산이 있어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화서문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조선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화서문은 장안문과
팔달문에 비해 격을 낮추어 석축의 규모도작고 1층 문루에 팔작지붕 형태이다.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옹성 안 석축에는 공사를 담당한 감독관과 우두머리 석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울과 개성 강화도에서 온 석공이 참여했는데 박상길은 축성이 끝난 후 석공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을 받았다.
생뚱맞게 서 있는 이 초가는 뭔지 잘 모르겠다.
화서문(華西門).
화서문은 화성의 서문이다. *화성의 서쪽* 이란 뜻이지만 서쪽에는 팔달산이 있어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화서문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조선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화서문은 장안문과
팔달문에 비해 격을 낮추어 석축의 규모도 작고 1층 문루에 팔작지붕 형태이다.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옹성 안 석축에는 공사를 담당한 감독관과 우두머리 석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울과 개성 강화도에서 온 석공이 참여했는데 박상길은 축성이 끝난 후 석공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을 받았다.
화서문 안쪽.
성곽에서 내려와 화서공원 억새밭은 둘러본다.
화서문 바깥의 억새.
화서공원에서 보는 북수원 일대의 풍경.
화서공원.
성곽 바깥에서 보는 화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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