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서울 권 산행 [가~사]

2013. 10. 03. 남한산. (청량산 460m.-벌봉 522m. )알파인클럽 1/3.

하야로비(조희권) 2013. 10. 4. 15:26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의 해발 460미터나 되는 고원지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요새지로 1971.3.17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외침을 막기 위해 토성을 쌓았던 것을 후세

사람이 여러 번 고쳐 쌓아오다가, 조선 광해군(1608) 때 본격적으로 개축한

것이 남한산성이 되었다고 하며,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피신하여 만 2천 여명의

병사와 분전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북한산은 남한산과 대칭되는 이름

으로 북쪽의 큰 산, 높은 산을 의미한다. 남한산성으로 더 알려진 남한산(해발 522m)

, 남한산에 있는 남한산성은 잘 알려져 있으나 남한산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한산은 산의 사방이 평지여서 밤보다 낮이 길다고 하여 일장산(日長山

주장산(晝長山)이라고도 한다.해발 522m의 남한산은 송파구 마천동 일부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북한산에 비하여 웅장하고 호탕한 맛은

적지만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아담한 산이다. 이곳은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인

구릉지로 평균 표고가 서울보다 300~500m 높은 고지대로 천연적인 요새지가 되어왔다.

     기온도 서울에 비해 4~5도 낮아서 여름철 피서지로 적당한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은 사적 제 57호로 지정된 남한산성이 축조되어 있어서 널리 알려진

산으로 그 지형의 사면이 외부로 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개의 고원지는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져서 주단야장(晝短夜長)의 폐가 있지만

이 산성지역만은 주장야단(晝長夜短)의 독특한 지형을 이루기 때문에 옛 부터 일장산

(日長山)이라고도 불리어 온다.성내 최고봉인 일장산에 오르면 멀리 인천지역의

낙조를 비롯하여, 서울은 물론 경기도 양주시, 여주군,양평군, 용인시, 고양시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절경을 연출하는 남한산성 현재 사적 제 57호로 지정 되어 있다.

 

 

 

 

 

 

성남시 양지동 들머리에서 산행준비.

 

 

 

도로를 따라 백련사 방면으로 진행

 

 

 

탑공원도 지나고.........

 

 

 

 

 

 

 

백련사 왼쪽방향.

 

 

 

 

 

 

 

 

 

 

 

남문(지하문)에서 왼쪽 성곽길로 진입.

 

 

 

 

 

 

 

 

 

 

 

남문을 지나 성곽을 배경으로 인증샷.

 

 

 

서을 송파구 방향 조망

 

 

 

 

 

 

 

매바위 근처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한창 공사중인 위례 신도시 방향

 

 

 

 

 

 

 

영춘정

 

 

 

위례신도시방향 조망

 

 

 

 

 

 

 

 

 

 

 

 

 

 

 

 

 

 

 

             ▣ 이회장군의 억울함 달래 준 매바위와 청량당▣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1624년(인조 2년)에 본격적으로 쌓기 시작해 2년 후인 1626년 11월 완성됐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설화가 전해진다.성을 쌓을 당시 구역별로 책임자가 나눠진 가운데 유독 동남

쪽만 성 쌓기가 늦어졌다. 다른 구역에 비해 지세가 험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동남쪽

은 부족한 경비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책임자가 공사경비를 주색에 탕진했다는 누명까지 쓰게 된다.

동남쪽의 책임자이자 누명을 쓴 인물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회장군.이회는 구차한 변명 없이 “내 죄가

 없다면 매 한 마리가 날아올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참수를 당하고 만다. 그런데, 그 순간 이회 장군의

 목에서 매 한 마리가 튀어나와 근처 바위에서 슬피 울다 멀리 날아가 버렸다. 매가 앉았던 자리에는

 매 발톱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시간이 흐른 뒤 이회가 맡은 축성공사 성체를 자세히 살펴보니 매우 견고하고 과학적인 축성기법으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됐다.

이후 사람들은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바위라 부르고, 이 바위를 신성시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 매바위는

 실제로 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관리가 그 부분만 도려내 가는

 바람에 현재는 떼어간 흔적인 사각형의 자취만 남아있다고.

이회 장군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자 마을 사람들은 그를 기리는 뜻으로 그가 죽음을 당한 수어장대

 곁에 사당을 만들었다. 이 사당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청량당(淸凉堂)이다.

 

 

 

 

 

 

 

 

청량산 쉼터.

 

 

 

 

 

 

 

연주봉 옹성

 

 

 

 

 

 

 

연주봉 옹성

 

 

 

 

 

 

 

 

 

 

 

하남시 방향 조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