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부산 권 산행 [가~사]

산청 구곡산 961m. (덕천서원) 2013. 11. 19. 희망봉산악회 3/3.

하야로비(조희권) 2013. 11. 20. 10:21

 

 

 

덕천 강변의 소나무.

 

 

 

 

 

 

 

 

 

 

 

 

 

 

 

산청의 덕천서원(德川書院)은 산청에서 말년을 보내신 남명 조식 선생을 기

 

리는 서원이다. 조식 선생이 돌아가시고 5년 뒤에 서원이 설립되었다.

 

 덕천서원은 아주 단촐한 구조의 서원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학생들의 숙소 겸 공부방으로 쓰이던 동재와 서재가 있고,

 

가운데 강학당에 해당하는 경의당이 있다  이 세 건물이 서원 건물의 전부이다.
서원 뒤로는 조식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숭덕사(崇德詞)라는 현판을 걸고 있는데, 이 건물 역시 단촐한 느낌이다.
덕천서원은,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초야에 묻혀 평생을 보내신 조식 선생의 담백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단촐한 구조이다.
서원 건너편에는 세심정(洗心亭)이라는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서원 부속 정자쯤으로 보이는데 이 세심정에서 덕천강이 내려다보인다.

 

 

 

남명 조식을 기려 지은 덕천서원의 강당인 경의당 전경. ‘경의당’이란 명칭은

남명의 핵심 가르침인경의(敬義)’정신을 본받고자 정한 것이다.

 

 

 

 

 

 

 

 

 

 

 

 

 

 

 

 

 

 

 

 

 

 

 

 

 

 

덕천서원 앞 덕천강 기슭에 세워져 있는 세심정(洗心亭)..

남명의 제자이자 유명한 성리학자였던 최영경(崔永慶)이 1582년(선조 15년)에 덕천서원 유생들의 휴식처로 세운 정자이다.

세심정에 걸려 있는 하수일(河受一)이 지은 기문에 ‘군자는 은거해 수양하며 한가히 거닐며 휴식한다. 대개 은거해 수양하는 곳에는

한가히 거닐며 휴식하는 곳이 있는 것이 옛날 도리이다.’라고 세심정을 지은 이유가 적혀 있다.

기록에는 ‘문밖 시냇가에 2칸으로 세웠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때의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임진왜란 후 복원하면서 취성정(醉醒亭)이라는 명칭으로 바꾸고, 1815년 중수 후 다시 풍영정(風詠亭)이라 개칭했다 한다.

1870년 덕천서원이 훼철되자 다른 곳으로 옮겨 지었다가 1920년대 혹은 1930년대에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 지었으며,

이름도 다시 세심정으로 고쳤고, 원래 2칸이던 정자는 현재 1칸으로 되어 있다..

 

 

 

 

 

 

남명 조식의 浴川 詩碑

 

 

 

 

全身四十年前累 (전신사십년전루)  /  온몸에 쌓인 사십년간의 허물,

千斛淸淵洗盡休 (천곡청연세진휴)  /  천섬 맑은 물에 모두 씻어 버리네.

塵土能生五內    (진토당능생오내)  /  만약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腹付歸流    (직금고복부귀류)  /  바로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부치리

 

 

 

 

 

 

 

 

 

시정문(時靜門)

 

 

 

 

 

 

 

 

 

 

 

귀가길 진안휴게소에서 바라본 마이산.